나는 한글은 세벌식, 영문은 드보락 자판을 쓴다.
윈도우 제공 한글 키보드 배열은 영문 입력 레이아웃이 Qwerty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장기간 자판 두 개 설치하고 alt-shift(기본값은 ctrl-shift지만)로 자판 레이아웃 변경을 하며 써 왔다.
기본 자판은 영문 드보락으로...
이렇게 쓰면 프로그램을 실행한 뒤 한글을 쓸 일이 생기면 alt-shift를 눌러 한글 IME로 전환한 뒤에,
한영키를 눌러서 한글로 전환해야 쓸 수 있다.
굉장히 불편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키보드 레이아웃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줄곧 그렇게 써 왔다.
(오히려 도스 시절 이야기나 새롬 데이타맨98 같은 놈들은 자체 자판 지원이라 세벌식/드보락 사용이 훨씬 편했다)
세벌식에 드보락을 쓰면 굉장히 편리한 게 암호 만들기다.
한글로 아주 기억하기 쉬운 단어를 정해서 드보락 자판 상태에서 세벌식 배열 기준으로 한글을 입력하면,
도대체 전후 상관관계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문자열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때부터인가, 키보드 후킹을 통한 피해를 막는답시고,
사용자가 자체적으로 보안을 철저히 할 능력이 있건 말건 수준을 평준화시켜서
'키보드 보안'이란 걸 설치해서 키 입력을 암호화하는 프로그램을 인터넷 뱅킹 등에서 강제로 설치하게 하였다.
이게 처음에는 단순하게 입력된 키값을 꼬아 주는 방식이었는지, 사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저런 후잡한 보안같지도 않은 보안을 조금 넘어서서 키보드 입력을 받은 값이 아닌,
스캔코드라든가 하드웨어 입력값 등을 기준으로 보안을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고난의 길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저런 프로그램 만드는 국내 개발자들이 세벌식이나 드보락 따위 눈꼽만치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인증서 암호 또는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거다.
난 암호 바꾼 적도 없고, Caps Lock도 켜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렸다는 거다. 두번 세번 입력해도 틀렸단다.
한번만 더 틀리면 막아버릴테니 은행 나와서 풀든가 말든가 맘대로 하란다.
문득 의심이 가서, 메모장에 내 암호를 쳐 놓고 그 알파벳을 그대로 Qwerty자판 기준으로 입력해봤다.
... 잘 되네.
사용자가 어떤 자판 레이아웃을 사용하는지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고,
그저 기계적으로 입력받은 자판이 Qwerty라고 가정하고 입력 처리를 하는 거다.
이거 가지고 몇 년을 싸웠는지 모른다.
몇 업체와 싸웠는지 모른다.
몇 년을 싸우는 동안 인터넷 뱅킹을 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기껏 외우기 쉽게 만든 암호를 그 배배 꼬인 영문 문자열까지 외워서 써야만 했다.
신한은행의 소프트캠프와는 3년을 싸운 끝에, 개발자가 '그럼 날개셋이란 IME를 써보세요' 라고 추천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닌, 내가 IME를 바꾸는 방식으로 해결했었다.
근데 2~3년이 지난 최근 다시 원복되었다. -_-
다행히 소프트캠프는 Bypass를 설치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걸 설치하면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을 정상 설치한 것처럼 웹사이트가 인식은 하지만
실제로는 보안 로직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사용하는 데 문제가 사라진다.
기업은행 쪽은 몇 시간을 통화한 끝에 고쳐 주겠다고 했는데,
고치기로 한 날짜에서 지금 한 달 반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이 글을 갑자기 쓴 이유는 오늘 기업은행 인터넷 뱅킹을 하다가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자주 쓰는 계좌를 등록하려는데, '계좌'가 입력이 안 된다.
암호 입력란도 아니다. 이상하다. 다시 살펴보니 진정 어처구니가 없다.
세벌식 자판에서 ㅖ는 숫자 7 위치에 있다.
그 결과 계를 입력하면 ㄱ7로 입력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뭔가 키보드 보안이 숫자입력과 숫자 이외 영역 입력을 별도 처리하고 있다는 말이겠다.
도대체 자주 쓰는 계좌 별명이 얼마나 보안이 중요하기에 키보드보안을 적용하는지부터 이해가 안 가지만,
어떻게 이딴 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키보드 보안입네, 할 수 있는 걸까.
당장 지금 쓰는 이글루스만 해도 그렇다.
태그를 입력할 때, 콤마를 찍으면 다음 태그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드보락 자판은 콤마가 Qwerty 자판 기준 w 자리에 있고
세벌식에서 저 자리는 받침 ㄹ에 해당한다.
그 결과, ㄹ받침이 들어가는 한글을 쓰면 태그 입력하다 말고 다음 칸으로 넘어간다.
무슨 말이냐면, '발전'이란 태그를 쓰려 하면 발의 ㄹ받침을 입력하는 순간 '발'이 태그로 입력되고 다음 태그로 넘어간다는 거다.
그래서 '발전'을 쓰려면 전을 먼저 쓴 뒤에 앞으로 와서 발을 입력해야 하는 거다.
ㄹ받침 들어가는 글자 두 개 들어간 태그는 쓸 수 없다. 딴데 쓰고 복사-붙여넣기 해야지.
이것도 SK에 고쳐달라고 했으나 6개월 넘도록 고칠 기미는 전혀 없다.
남들이 쓰는 거 쓰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왜 남들이 쓰는 걸 써야 하는가?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걸 만들어 쓰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윈도우를 비롯 대다수 운영체제에서 정식으로, 그리고 기본으로 지원하는 자판을 쓸 뿐이다.
비단 키보드만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마이너로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한 불편과 고통을 의미한다.
오늘 아침 출근 전에 소리바다 5천원 40곡 다운로드 이용권을 결제했다.
마이클잭슨도 약간 동기 부여가 됐지만 결정적인 것은 윤미래. (이 건은 별도로 포스팅 예정)
출근길에 들으면서 가다가 예전에 뮤직비디오 지나가다 한 번 보고 잠깐 감동?했었던 '검은 행복'을 듣고,
책 읽다 말고 아이팟 꺼내서 가사보면서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혼혈에 대한 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못 배운 사람에 대한 차별,
한국에 일하러 온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 사고로 외모가 망가진 사람에 대한 차별, 왼손잡이 차별, 차별, 차별, 차별...
가히 차별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어떤 이유로 차별을 받는 사람들까지도 테두리를 벗어나는 타인을 차별하는 곳 대한민국.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를 차별해 왔겠지.
난 그저 불편할 뿐인 키보드 하나로도 이렇게 짜증나고 복장 터지는데,
생존이 걸린 차별을 받는 사람들은 과연 어떨까.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좋거나 자랑스러운 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요즘이다.





최근 덧글